오디오 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전자 서점이 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윌라이고, 윌라를 통해서 오디오북을 구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SF소설 '테세우스의 배'. 저작권이 있으니 줄거리는 생략하고, 그 소설에 '순간이동'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순간이동은 대단한 에너지를 필요로하는 거의 불가능한 능력인데, 간단한 예를 들면 아파트 1층에서 17층으로 순간이동을 하기 위해선 위치 에너지뿐만이 아니라 17층에 빈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 복잡한 제약 사항이 있다.
때문에 소설에서 등장하는 순간이동 방식은 1층에 있는 사람의 분자구조 하나하나를 데이터화 해서 클라우드로 저장하고 17층에 있는 분자 프린터를 이용해 분자를 하나하나 다시 프린트 한 다음에 1층에 있는 사람을 소각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Copy & Paste 후에 Delete를 하는 무식한(?) 방법을 이용해서 순간이동을 한다. 이 과정에 오류가 생겨, 출발지에 있는 사람이 소각 된 후, 목적지와 출발지에 동시에 사람이 프린팅 되어 두 사람이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런 개념을 게임에서도 본 기억이 있는데 그 게임은 보더랜드다.
어떤 이들은 '잉? 왠 보더랜드?" 라고 의문을 표할수도 있겠다. 자 옛날 기억을 끄집어내어 주인공 일행이 튜토리얼 지역에 해당하는 파이레스톤에 도착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멍청한 로봇 클랩트랩이 등장하며 반갑다고 시설 여기저기를 소개해 해 주는데, 그 시설 중 하나가 '뉴 유 스테이션'이다.
근처에 가면 스캐너가 사람을 데이터화 해서 서버에 저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반대편 스테이션에 사람을 프린팅 한 다음에 원래 있던 주인공을 분해하고 나면 주인공은 기억을 가진체 프린팅이 되기 때문에 순간이동을 한 것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설 이름이 New YOU Station이다. 너를 새로 만들어 냈기 때문에...
보더랜드 1의 번역질은 꽤나 나빴기 때문에 그냥 뉴 유 스테이션이라는 이름도 스쳐지나가고 순간이동장치로만 기억에 남을텐데 이러한 원리가 숨어 있다.
영화도 비슷한 컨셉이 등장한다. 프레스티지라는 꽤 오래된 영화인데, 마술로 경쟁을 벌이는 마술사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마술사는 경쟁자가 선보이는 순간이동 마술만큼은 어떻게 해도 뛰어넘을 수가 없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를 뛰어넘기 위해서 과학자인 '테슬라'를 찾아가고 노력 끝에 테슬라는 순간이동기를 발명해 낸다.
마술에 사용하기 위해서 순간이동기를 사용해 본 마술사는 치명적인 문제를 찾아내게 되는데, 순간이동기인 줄만 알았던 이 기계는 사실 기계 안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복제 해 내는 복제기였던 것이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욕심에 주인공은 이 기계를 마술에 사용하게 된다. 마술의 철창 아래 이 기계를 감춰두고 마술이 시작되면 자기 자신을 복제한다. 복제된 자신은 무대 뒤에서 짜잔 하며 나타나며, 원본은 철창 아래 감추어져 있는 수조에 빠져 익사를 당하게 된다. 이렇게 마술의 흥행을 이어간다.
이제 복제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복제가 되어 살아남은 쪽은 복제하기 이전부터 기억이 주욱 이어지기 때문에 자신은 마치 원래의 장소에서 이곳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반대쪽은 그냥 그대로 죽어 소멸이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 당신이라면 복제기에 들어가 버튼을 누를 수 있을 것인가?
1. 당신은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확정적으로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의 기억은 이전에 시도했었던 복제의 기억이 남아 있어 버튼을 누른다면 죽는다는 생각보다는 순간이동에 가깝다는 착각이 들 수도 있다.
2. 복제의 버튼을 눌러 살아 남았다면 비록 머릿속엔 순간이동의 기억밖에는 남아 있지 않겠지만, 버튼을 눌렀던 또다른 자신은 죽음과 소멸을 당했을 거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다시 또 한번의 복제(순간이동)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버튼을 또 누를 수 있을것인가? 순간이동의 기억으로 죽음이 무뎌졌을까? 아니면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설까?
애석하게도 프레스티지와 보더랜드는 이런 상념과 사상을 주 테마로 다루고 있지 않다.
보더랜드는 그냥 병맛나는 스토리를 의도한 게임일 뿐이고, 프레스티지 영화는 진짜 반전은 복제기계따위가 아니라 경쟁자가 사실 XXX 한 OOO 였기 때문에 마술 하나로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허무주의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게임이 있으니, 바로 'Soma'다.
혜성이 지구를 강타하여 지구가 멸망한다는 아니고 (혜성따위로 지구가 멸망할리가...) 인류가 멸망한, 아니 멸망해 가는 시대를 다루고 있다.
더 이상 지구라는 고향에서 생존을 보장받기 힘들어진 몇 안 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모두 디지털화 하여 가상 공간에 업로드하고, 가상공간을 운영하는 서버 컴퓨터를 우주로 발사하여 인류의 기억을 유지시키고자 한다.
한편 인류가 급감하자 사회를 관리하던 관리 AI의 알고리즘이 꼬였는지, 이 AI는 인간들이 저장해 놓은 기억들을 마구마구 복구하여 로봇들에게 이식을 시키고 있었다.
주인공은, 혜성이 지구를 방문하기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백업된 기억이 AI에 의해서 로봇으로 이식되면서 다시 자아를 찾은 (부활한?) 사람이다.
게이머가 조종하는 주인공은 잃어버린 가상공간 서버를 찾아 우주로 발사 함과 동시에 가상 공간 안으로 이주 하기 위해 심해를 탐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심해에 적합한 몸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한 번, 그리고 가상공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의식(기억) 이식을 하게 되는데, 기억 이식이란것도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기억을 메모리에 옮기고 새 몸 (혹은 가상공간)에 복사 하는 방식이다.
게이머가 플레이하는 주인공은 운 좋게(?) 심해 작업 신체로 복사 된 기억이며, 이전 몸에 들어 있는 기억이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가상 공간으로 들어간 것은 자신의 복제된 기억이며 자신은 가상공간에 들어가지 못한 채 아무도 없는 심해에서 쓸쓸히 죽어가야만 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게임에선 이것을 그냥 '동전 던지기'에 비유를 한다. 앞면이 나온 나는 계속 더 나은 삶으로 변신을 하는 나이지만 뒷면이 나오면 나의 존재는 사라지는 그런 것 말이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면 많은 생각이 든다.
비록 모든 기억을 가지고 나의 복제가 생성된다면 '테세우스의 배' 인물처럼 복제된 나를 나로 여기고 편안하게 소멸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소마' 처럼 또 다른 나를 내것을 뺏어 간 별개의 개체로 미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