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식 체온계를 유용하게 쓰고 있는데 경고음이 떴다. 배터리 부족이다. 집에 쟁여놨던 충전지로 갈아 끼우는데 배터리 잔량이 반도 되지 않는다.
이럴수가... 분명 완충해서 넣어 놨었는데...
이처럼 건전지 교체 시기가 다가와 비상용으로 사 놓았던 건전지를 찾아보면 좀 난감한 경우가 많다.교체해보면 건전지 잔량 눈금이 반 정도밖에 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기에 연결하지 않고 놔둬 방전이 되는 자연방전 때문이다. 전기가 -극에서 공기중으로 빠져나가 +극으로 들어온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건전지 내부의 에너지 밀도가 높다보니 화학 반응이 일어나 에너지를 낮추는 안정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비상용으로 건전지를 쟁여 놓기 좀 겁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건전지는 식수, 비상식량과 함께 재난상황에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 구비해 놓도록 국가에서 지정한 물품중 한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혹은 살 수 있는) 원통형 건전지는 4 + 1 종류가 있는데 얼마나 보관성이 좋을지를 따져보면 다음과 같다.
망간 건전지는 지마켓 벡셀 기준 48개에 15,000 원 정도 하니 개당 300원 정도다.
장점으로는 가격이 저렴하고 인체에 무해한 성분으로 되어 있어 파손되어도 덜 해롭다 정도이고
단점으로는 용량이 낮고 자연 방전률이 높아서 사 놓아도 얼마 못 있어 용량이 많이 줄어든다. 때문에 비상용으로 쟁여 놓았다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쓸 수 없게 된다.
알카라인 건전지는 지마켓 벨셀 기준 48개 18,000 원 정도 하니 개당 380원 정도 한다.
장점으로는 (망간에 비해 비싸지만) 여전히 저렴하고 용량이 높은데다가 자연방전률도 낮다. 5년 정도 보관하면 용량이 80%까지 줄어드는데 법적으로 80%이상만 되면 팔 수 있기에 생산된지 5년 언저리 제품도 가게에서 팔 수 있기는 하다.
이렇게 보면 비상용으로 쟁여놓기 좋을 것 같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이 건전지는 수산화칼륨을 전해액으로 사용하는데 이 수산화 칼륨은 인체에 매-우- 해롭다. 피부에 발진을 일으킬 수 있으며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불량품이 섞이기 마련이므로 격벽이 손상되어 전해액이 새어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사면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다.) 피부에만 안 좋은것이 아니라 철을 부식시키게 되므로 제품을 망가뜨리게 된다.
TV 리모컨이야 얼마 안 한다 해도 십만원이 넘어가는 도어락이 저렇게 부식되면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더욱이 전해액이 새어 나오는 누액현상이 건전지를 사용하지 않을때도 발생할 수 있어 보관성을 악화시킨다.
할인할 때 스위스밀리터리 건전지를 잔뜩 사 놓았는데 1년도 안되서 반을 그냥 버린 경험이 있다.
니켈 카드뮴 전지는 이차 전지, 그러니까 충전지에 속한다. 가격은 2개에 3700원 정도로 충전치 중에서는 저렴하다.
장점은 충전해서 쓸 수 있다?? 정도. 개발된지 상당히 오래된 전지라서 성능이 현세대 충전지에 비하면 많이 약하다.
카드뮴이라는 중금속을 포함하고 있어 환경문제에 일조하기 때문에 현재는 거의 생산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에 충전지라고 검색을 하면 반드시 '메모리 효과'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데 일조한 건전지이기도 하다.
자연 방전률이 낮지 않아 보관성은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 주기적으로 재충전을 하면 좋겠지만, 저 메모리 효과 란 것 때문제 재충전에 손이 많이 간다.
니켈 금속수소 배터리는 아직까지도 시장의 주류 건전지다. 가격은 4알 기준 8,000 원부터 30,000원까지 다양하다.
원래 니켈 금속수소 배터리는 자연방전률이 꽤 높아서 충전 상태로 팔지 않기 때문에 일차 전지처럼 포장 뜯고 바로 쓸 수 있는게 아니라 충전을 한 다음에 써야했다.
그러던 중 파나소닉이란 회사에서 외계인을 고문해 자연방전률을 극도로 줄인 에네루프라는 제품을 내놓았고 이걸 이용해 충전상태로 제품을 팔기 시작해서 니켈 금속수소계의 왕족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기술 비용이 제품값에 그대로 포함되어서 가격은 어마무시하다.
이 파나소닉의 에네루프 때문에 사람들은 니켈 금속수소건전지가 자연방전률이 매우 낮다고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 놓으면 오래 보관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Lexel의 ekeep 같은 건전지를 샀다가는 6개월도 안되 반으로 줄어든 용량을 체험하게 된다. (필자가 그랬다)
또한 전압이 1.5V가 아닌 1.2V다. 때문에 좀 오래된 전자제품에는 맞지 않는데 예를 들어 만들어진지 오래된 도어락은 1.5V를 상정하고 만들어져서 일정 전압 이하까지 떨어지면 건전지 교체 경고음을 내게 되어 있는데 여기다 니켈 충전지를 꽂으면 얼마 쓰지 못하고 바로 교체 경고음을 발생시킨다.
전자 금고같은곳에는 보통 건전지 4개를 넣어 5~6V 전압으로 자물쇠를 움직이는데 니켈 충전지 4개를 넣어도 4.8V밖에 되지 않아 자물쇠를 움직일 힘이 부족해서 계속 에러를 내는 경우가 잦다.
리튬 배터리는 떠오르는 신성이다. 리튬 배터리 기술이 어마무시한 속도로 발전하면서 (이게 다 스마트폰과 전기차 때문이다) 엄청 소형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반지에도 리튬 배터리가 들어간다) 이걸 AA / AAA 규격에 우겨 넣은게 리튬 전지다.
리튬 건전지 자체는 꽤 예전부터 사용이 되어 왔다. 예전에 흔히 수은전지라 불렸던 단추전지가 사실 리튬전지다. 수은은 몸에도 해롭고 환경에도 좋지않아 애저녁에 퇴출되었다. 하지만 AA/AAA에는 가성비가 퍽이나 구렸어서 잘 만들어지지 않다가 최근에야 충전지의 형태로 생산되고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리튬전지 자체의 자연 방전률은 극히 낮다. 다만 리튬전지는 에너지 밀도가 매우 높아 위험한 물건이므로 반드시 안정 회로를 포함시켜야 한다. 건전지 중에서 이 리튬 배터리는 격렬하게 불타 오를 수 있다. 문제는 싸구려 안정회로일수록 회로 자체에서 전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누설전류가 있다.
예를 들어 XBox Elite 2 게임패드 (비싸다!!!) 는 충전후 1년 가까이 놔두어도 배터리의 용량에 그닥 변화가 없지만 저가의 게임패드나 저가 내장배터리 마우스는 몇 개월만 보관해도 배터리가 다 닳아 있는걸 볼 수 있다.
리튬 건전지도 마찬가지라서 크기와 가격문제로 좋은 안정 회로를 사용할 수 없기에 전력 보존률이 애매하다.
여담으로 리튬배터리의 용량이 커서 오래간다고 도어락 같은곳에 끼우면 안된다.
다른 배터리는 1.5V 부터 시작해서 전압이 서서히 떨어지지만 리튬 배터리는 전압이 4.2V부터 시작하는걸 회로를 이용해서 강제로 1.5V로 낮춘것이라 사용내내 1.5V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0V로 떨어진다.
도어락은 전력이 일정 전압 이하로 떨어지면 건전지 교체 경고음을 내는데 리튬은 갑자기 0V로 떨어지기 때문에 건전지 부족 경고음 없이 바로 먹통이 된다.
다른 제품이야 동작 안되면 바로 건전지를 교체하면 되지만 도어락은 대부분 건전지를 문 안쪽에 장착하기 때문에 밖에서 문을 열 수 없는 난감한 지경에 빠지게 된다.
자 이제 건전지를 쟁여 놓기로 결정했다면
일차전지를 생각한다면 에너자이저나 벡셀같은 이름있는 제품을 사서 쟁여 놓는것이 낫다. 당장 쓰려면 싸구려 사서 써도 되지만 누액으로부터 안전하게 오래 보관하려면 역시 품질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이차전지는 리튬이 가장 끌리지만 아직 AA/AAA 규격에선 기술이 무르익지 않았다. 더 기다릴 필요가 있다.
대신 니켈 금속수소전지로 눈을 돌려 에네루프같은 아니면 최소한 에너자이저나 벡셀같은 품질이 괜찮은 제품을 사서 쟁여 놓는것이 좋다.
(결론은 비싼게 좋다가 되어렸다...)